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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아는 척 해보자

비행기 기름은 얼마나 채우나요? 만땅? feat. 아비앙카 5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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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종종 물어보는 질문중에 '비행기는 연료를 충분히 채우고 비행을 하나요? , 만땅인지 기장이 확인하나요?' 하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것에 대해 포스팅해볼까 합니다.

 

비행기 기름(연료)은 '항공유' 라는 연료를 사용합니다. 민항기에서는 주로 JET A, JET A-1 등의 항공유가 사용되고 지역에 따라 사용하는 항공유가 다릅니다. 미국에서는 주로 JET A 를 사용하고 우리나라에서는 JET A-1 을 주로 사용합니다. 두 지역을 오가면서 서로 다른 종류의 연료가 섞인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항공기는 운항을 할 때 '법정연료' 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자동차처럼 생각날 때 주유소에 들러서 기름을 넣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공법에 의거, 최소한 이만큼의 연료는 꼭 탑재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이 있습니다. 이 연료의 양은 다음의 항목들을 모두 더한 양입니다.

 

1. 비행기가 이륙해서 목적지에 착륙할때까지 요구되는 연료량.

2. 예상치 못한 요인에 대비하기 위해 1번의 양의 5% 추가

3. (만약 목적지의 기상이 좋지 않다면) 우회(divert)할 공항까지 갈 연료량

4. 목적 공항에 도착해서 30분동안 비행할 수 있는 연료량(Final Reserve Fuel)

 

1~4번까지 연료를 계산할 수 있습니다. 운항관리사라는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이것을 계산해서 오늘의 비행에는 얼마만큼의 연료량이 필요하다는 것을 조종사에게 알려줍니다. 그럼 조종사는 이를 확인하고 출발전과 이륙전에 연료량이 이 '법정연료' 보다 많은지를 꼭! 확인하고 이륙하게 됩니다. 만약 이륙하기 전에 공항에 트래픽이 많아서 대기가 길어져 Taxi 를 하는 도중에 이 연료량보다 적게 남게 되었다면... 다시 돌아가서 연료를 재보급해야 합니다. 법정연료보다 적은데 이륙을 한다면 큰일나겠죠?

 

그럼 법정연료보다 많이 만 채우고 가면 되니까 안전하게 항상 만땅으로 채우고 다니면 좋을까요?

 

조종사 입장에서는 연료가 많으면 운용할 때 좋은점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늘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우선 비행기는 무거울수록 연료를 많이 소모합니다. 무거운 물체를 이동시키는 것이 가벼운 것보다 에너지가 더 많이 들겠지요? 항공사에서도 굳이 연료를 더 소모하며 운항하는 것은 수익성에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착륙할 때 비행기가 견딜수 있는 하중이 정해져 있습니다. Maximum Landing Weight 이라고 합니다. 목적지까지 가면서 연료를 소모해서, 적어도 착륙할 때는 비행기가 이 무게보다는 가벼워야합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주변 공항을 맴돌며 연료를 소모하고 착륙해야 합니다 (...) 이런 제약조건이 있기 때문에 항공사와 조종사들은 법정연료에서 항공사나 조종사가 재량껏 넣을 수 있는 일정 수준의 연료들을 조금만 더 추가해서 항공기 운항을 합니다.

 

Tankering Fuel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주로 단거리 운항에서 사용되는 방식인데요, 예를 들어 출발지의 연료가격이 도착지의 연료가격보다 많이 싸서(환율등의 여견도 감안합니다), 연료소모를 고려하더라도 출발지에서 왕복 연료를 다 싣고 왔다 갔다하는 것이 경제적일 때가 있습니다. 이 때 추가로 들어가는 연료가 Tankering fuel 입니다. 일본, 중국등의 단거리 노선에서 가끔씩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연료 부족으로 인해 일어난 안타까운 참사, 아비앙카 52편(Avianca Flight 52)

 

 

연료부족으로 인해 사고가 일어난 경우도 있습니다. 1990년 1월 25일,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뉴욕으로 향하던 아비앙카 52편이 대표적인 사고입니다. 이 사고로 많은 인명피해가 있었습니다.

 

아비앙카 52편이 뉴욕 JFK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안개와 바람때문에 많은 트래픽이 착륙을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아비앙카 52편의 대기 순서도 많이 밀려있었죠. 아비앙카 52편이 최초에 상공에서 대기하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 근처의 공항으로 회항했더라면 충분한 연료의 양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충분한 연료가 있었기에 그들은 대기를 선택하였고, 착륙을 시도했으나 악기상의 영향으로 착륙을 한번 포기합니다(Go around). 그리고 두번째 시도 중 연료가 바닥나 엔진이 차례로 꺼지면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조종사의 상황판단과 의사결정은 이처럼 중요합니다. 연료가 얼마나 남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늦지않게 회항을 결심했어야 했습니다. 이 부분이 가장 아쉬운 대목입니다. 또 조종사와 관제사와의 의사소통 실패도 한 몫을 하였습니다. 당시 조종사들은 관제사에게 적극적으로 착륙 순서를 당겨줄 것을 전달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콜롬비아의 모국어인 스페인어와 뉴욕관제사의 영어의 뉘앙스가 미묘하게 다른 것도 한가지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조종사들이 '우선(priority) 착륙'을 요구했는데, 스페인어에는 이 단어에 '비상'이라는 어감이 있었으나 영어를 사용하는 관제사에게 그런 의미전달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 사고 이후, 조종사와 관제사는 관제용어를 표준화 시켜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착륙시 필요한 연료의 130%밖에 남지 았았을 때, 조종사는 관제사에게 "We are minimum fuel" 이라고 말하도록 용어를 표준화 시켰습니다. 그리고, 착륙시 필요한 연료 이하로 떨어지면 "mayday,mayday, mayday fuel" 이라고 비상선언을 해야만 합니다.

 


연료는 조종사에게 피와 같습니다. 연료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의사 결정을 해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이 타시는 비행기에는 언제나 목적지로 가는 연료와 이를 보완할 예비 연료를 법적으로 싣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안타까운 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표준화된 절차들도 있습니다. 연료가 부족할 일은 없으니, 안심하고 비행기를 타셔도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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